경제개발 5개년을 필사적으로 막으려 했던 김영삼과 김대중

영상으로도 만들었으니 시청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지난 게시글에서 경부 고속도로 건설에 대해서 다뤘던 만큼, 1960년대 말, 대한민국은 눈부신 경제성장을 꿈꾸며 국가 현대화의 박차를 가하던 시기였습니다.

 

 

경제개발 5개년을 필사적으로 막으려 했던 김영삼과 김대중


박정희 정부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산업화의 동력과 더불어 대규모 국책 사업에 매진, 그 중심에는 서울과 부산을 잇는 경부 고속도로 건설 계획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거대한 프로젝트의 그림자에는 수많은 의문과 우려가 존재했습니다. 특히 야당 지도자들 중 젊은 열정과 민심을 대변하는 두 인물, 김영삼과 김대중이 이 프로젝트에 강력히 반대하며 여러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김영삼과 김대중이 제기한 첫 번째 문제는 예산 낭비였다.

 

대한민국은 전쟁에서 벗어나고 20년도 채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국민들의 삶이 안정되지 않은 시기였습니다. 특히나 난방 시설도 제대로 되지 않은 시점에서 정부가 단기간 내에 경부 고속도로를 완공하기 위해 400억 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한 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또한 이 과정에서 행정 절차와 예산 집행의 투명성이 크게 무시되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습니다. "우리가 투자하는 돈이 정말 국민을 위한 것인가?"라는 질문이 그들의 목소리 속에 담겨 있었습니다. 두 지도자는 국가가 현대화의 과도한 속도와 불균형 발전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그렇지만 박정희 정부는 서울과 부산을 잇는 대동맥을 구축하는 데 집중하면서 상대적으로 소외된 지방과 농촌의 발전은 후순위로 밀어내고 있었습니다. 김대중은 경부 고속도로를 건설하면 지역 간 경제 격차는 더욱 심화되고 우리나라 전체의 균형 발전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주장하며 보다 체계적인 지역 발전 계획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놓았습니다.

 

 

한간에는 김대중이 곡창지대의 중심이었던 전라도를 등에 업고 지역 갈등을 초래했다며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물며 곡창 지대를 담당했던 전라도와 공업화가 되어가는 경상도의 마찰도 상당했습니다. 경부 고속도로의 또 다른 큰 문제점은 과속 공사였습니다. 당시 정부는 단기간 내에 완공을 목표로 건설 일정을 서두르며 안전 검증과 기술적 완성도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김대중은 임시국회 본회의에서 "만약 경부 고속도로가 마우 아파트처럼 5층 건물이라면 폭삭 무너졌을 것이다"라는 강한 발언을 하며 과도한 속도에 따른 위험성을 경고했습니다. 김영삼 역시 "이렇게 서두르면 결과적으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이 위협받을 수 있다"라며 안전 문제를 강하게 문제 삼았고, 실제 김대중과 김영삼이 도로 건설에 누워 시위를 벌였다고 기사가 났는데, 이는 거짓 기사이자 가짜 뉴스입니다.

 

 

이는 음성에서 일어난 반대 시위 현장으로, 당시 현장 공사를 반대하는 인물은 다른 인물이라며 음성 군청이 밝히기도 했습니다.

당시 야당 내에서는 "국가를 파먹는다"는 비판도 쏟아졌는데, 이는 정부가 일부 업자들과 유착을 통해 부당한 이익을 취하려 했다는 의혹에서 비롯되었습니다.김영삼과 김대중은 이러한 부패와 불투명한 거래가 국가 자산의 낭비로 이어질 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신뢰를 저버린다며 강력히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반대 논리는 단순히 경제적, 기술적 문제에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당시 야당은 정부의 일방적인 추진력에 맞서 국가 현대화의 이면에 숨은 정치적 이익과 지역 편중 문제를 꼬집었습니다.

김대중은 우리 민중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정치인으로서 이 거대한 사업이 결국 특정 지역과 엘리트에게 혜택을 주는 도구가 될 위험이 있다고 주장하며 사회 정의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강조했습니다. 또한 많은 학자들과 언론인들도 이 문제를 힘도 있게 다루며 정부의 초점이 지나치게 현대화에 맞춰져 있다는 점을 지적할 만큼 우둔한 판단을 내리는 오착을 범하기도 했습니다. 반면 정부 측에서는 이미 확고한 지지와 찬성 여론이 형성된 상황에서 당의 반대는 반대를 위한 반대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정치권 내부에서는 이들이 단순히 정치적 이득을 위해 반대한다는 시각도 존재했으나 역사적 기록과 당시 언론 보도를 보면 두 지도자의 주장은 단순한 정치적 계산을 넘어서 국민 전체의 이익과 미래를 고민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비록 경부 고속도로는 정부의 강행에 의해 2년 반만에 완공되었고, 이후 한국 경제의 급격한 발전에 크게 기여한 국가 대동맥으로 자리잡게 되었지만, 김영삼과 김대중이 제기한 문제점들은 오늘날에도 여러 의미를 남겼습니다.

 

 

그들이 반대했던 이유는 단순히 도로 한편의 건설이 아니라, 국가 자원 배분의 공정성과 지역 균형 발전, 그리고 국민 안전을 위한 근본적 검토의 부족에 대한 경고였다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으나, 실질적으로 이를 두고 다툰 건 전라도와 경상도 뿐이었고, 이는 정권의 여야를 등에 업은 일부 국민들 뿐이었습니다. 이들의 목소리는 후대 국민들에게 성공적인 국가 발전은 속도와 효율성만이 아니라, 국민 전체의 이익과 안전, 그리고 지속 가능한 발전에 기초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었다는 점에서, 어쩌면 이는 박정희 정부의 꽉찬 승리이자 야당의 텅빈 승리라고 보여줄 수 있는 사례라고 생각됩니다.

 

지금까지 경부 고속도로를 반대했던 당시에 야당과 여론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영상으로도 만들었으니 시청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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