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이 편하게 정치를 할 수 있었던 진짜 이유

오늘은 조선의 성군, 세종대왕이 어떻게 그렇게 안정적인 통치를 할 수 있었는지를 역사적 배경 속에서 풀어보려 합니다.
영상을 선호하시는 분들은 아래 영상으로도 시청하실 수 있어요.


조선 왕조, 세 사람의 손으로 태어나다

조선은 단순히 하늘이 내려준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그 시작은 태조 이성계, 정도전, 태종 이방원이라는 세 인물의 손을 거쳐 탄생합니다.

  • 태조 이성계는 창업 군주로서 칼을 들었고,
  • 정도전은 새로운 나라의 제도와 이념을 설계했으며,
  • 태종 이방원은 그 나라를 철저히 통제하며 안정을 꾀했습니다.

피로 다져진 태종의 권력

세종의 아버지 태종 이방원은 왕자의 난을 통해 형제들을 숙청하고 권력을 장악했습니다.
공신도, 장인도, 아내의 친정도 그의 정치를 위협한다면 모두 제거됐습니다.
실제로 왕비 원경왕후 민씨의 오빠들조차 권력 안정을 위해 처형당했습니다.

태종에게 정치는 곧 위험 제거였습니다.
그는 정적을 모두 숙청한 후에야 나라를 '왕의 나라'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태종이 만들어 놓은 정국의 안정

태종은 왕권 강화를 위해 다음과 같은 조치를 취했습니다.

  • 6조 직계제 도입으로 의정부 권한을 약화
  • 군사권을 직접 장악하고 끝까지 내려놓지 않음
  • 정적 숙청으로 세종의 통치 기반 마련

심지어 세종이 왕위에 오른 이후에도 태종은 여전히 군사권을 손에 쥐고 있었습니다.
세종은 권한을 가졌지만, 태종은 실질적인 방패가 되어주었던 것이죠.


세종, 편안한 시작이 가능했던 이유

세종은 아버지의 그늘 속에서 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그늘은 단지 그림자가 아닌, 정치적 보호막이었습니다.

  • 외척은 이미 제거되어 권력의 외부 간섭이 없었고
  • 집현전을 부활시켜 인재를 자유롭게 등용할 수 있었으며
  • 군사적 위협은 태종이 처리해주고 있었습니다.
세종대왕

덕분에 세종은 개혁과 학문에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었고, 훈민정음, 측우기, 농서 간행, 천문 연구 등 굵직한 업적들을 이뤄낼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철혈 위에 핀 세종의 자비

세종은 아버지의 방식과는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그는 백성을 사랑했고, 관료의 부정에는 단호했습니다.
하지만 정치의 기초는 어디까지나 태종이 깔아둔 판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대마도 정벌(1422)**은 세종의 업적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병력을 지휘한 인물은 퇴위한 태종이었습니다.

세종은 조정과 내치에 집중하고, 태종은 실질적인 군사행동을 담당한 이중 권력 구조였던 것입니다.


정치란 결국 기반이 만든다

세종은 뛰어난 군주였지만, 그 뛰어남이 꽃을 피운 데에는 태종이라는 뿌리가 있었습니다.
태종이 피로 가시덤불을 치웠기에, 세종은 그 위에 백성을 위한 나무를 심을 수 있었습니다.

결국, 조선을 이끈 두 왕은 스타일은 달랐지만, 하나의 방향으로 조선을 밀어간 두 개의 바퀴였던 셈입니다.


마무리하며

세종의 위대함은 단지 그의 인품이나 능력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를 왕으로 만든 아버지 태종의 철저한 정치가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세종의 자비로운 모습은 피어날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역사는 늘, 혼자의 결과가 아닌 연결된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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